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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색소폰 대중화의 선구자들 : 이정식, 신현필, 이병주

by 브라이언 양 2025. 4.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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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극의 색소폰 연주자 관련 사진
한국의 대표적 색소폰 연주자

목 차
1. 이정식, 한국 색소폰 재즈의 문을 열다
2. 신현필, 한국 재즈 색소폰의 숨은 거장
3. 이병주, 새로운 세대와 함께 걷는 색소폰 아티스트

글쓰기 앞서 : 한국과 색소폰의 만남

한국의 대표적 색소폰 연주자 이정식, 신현필, 이병주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합니다.

색소폰이라는 악기는 어쩌면 한국 사회와 참 잘 어울렸는지도 모릅니다. 때론 서글프고, 때론 정열적이고, 때론 조용히 눈물짓는 소리.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한 장면처럼 스며드는 색소폰 소리는 한국인의 감성과 자연스럽게 포개졌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색소폰이 대중적이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낯선 서양악기로 시작한 색소폰은, 몇몇 이들의 헌신과 열정 덕분에 서서히, 그리고 확실하게 우리 삶 속으로 스며들었습니다. 그 과정을 지켜본다는 것은 단순히 음악적 변화를 넘어서, 한국 사회가 세계를 향해 열리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긴 여정을 함께 느끼는 일과도 같았습니다.

오늘은 한국에서 색소폰 대중화를 이끈 세 명의 대표적 연주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그들의 걸음, 그들의 숨결 속에는 시대의 무게와 음악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1. 이정식 , 한국 색소폰 재즈의 문을 열다

이정식. 한국 재즈 색소폰의 살아있는 전설이자, 색소폰이 '특별한 사람들만 아는 악기'에서 '모두의 악기'로 자리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는 거리가 먼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듣게 된 스탠 게츠(Stan Getz)의 부드러운 색소폰 소리에 매혹되면서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스탠 게츠의 「Desafinado」를 처음 들었을 때의 감동을 이정식은 후에 "마치 내 안에 잠자고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이정식은 국내 활동에 그치지 않고 세계적인 연주자들과 교류하며 음악적 스펙트럼을 확장했습니다. 특히 그는 미국 보스턴의 버클리 음대(Berklee College of Music)에서 유학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재즈 뮤지션들과 함께 공부했습니다. 귀국 후 그는 단순히 연주자가 아니라, 한국 재즈 씬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그는 후배 양성에도 힘썼습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재즈 클럽 붐이 일어났을 때, 이정식은 '올댓재즈', '원스인어블루문' 같은 재즈 클럽에서 연주하며 재즈의 저변 확대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또한 다양한 영화 OST에 참여해 대중과의 거리를 좁혔습니다. 특히 1995년 개봉한 영화 『접속』의 색소폰 테마 연주는, 한국인들의 뇌리에 색소폰 소리의 서정성과 깊이를 강렬히 각인시켰습니다.

그의 연주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이야기었습니다. 색소폰이 한 인간의 감정, 시대의 공기, 보이지 않는 마음속 풍경까지 담아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이정식. 그는 한국에서 색소폰을 진정한 '예술'로 승화시킨 연주자였습니다.

음악적으로 이정식의 가장 큰 특징은 '균형'이었습니다. 그는 기교와 감성, 전통과 혁신, 서구적 재즈 어법과 한국적 정서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을 유지했습니다. 그의 연주는 기술적으로 뛰어나면서도 결코 과시적이지 않았고, 깊은 감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결코 감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이정식은 수많은 앨범을 통해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그의 대표작 『Blue Rain』(1992), 『Seoul After Midnight』(1997), 『Saxophone Romance』(2003) 등은 한국 재즈 음반의 고전으로 손꼽히며, 지금까지도 많은 음악 팬들에게 사랑받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정식은 교육자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해냈습니다. 그는 국내 여러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했으며,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아낌없이 나누었습니다. 그의 제자들 중 상당수가 현재 한국 재즈 씬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정식의 영향력이 단순히 한 세대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2. 신현필, 한국 재즈 색소폰의 숨은 거장

한국 재즈 씬에서 신현필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연주자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그는 색소폰을 통해 음악의 깊이를 전달하고, 그 소리는 단순히 음을 내는 것을 넘어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는 듯합니다.

1965년 부산에서 태어난 신현필은 어릴 때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습니다. 그는 중학교 시절 학교 밴드에서 처음 색소폰을 접했고, 그때부터 이 악기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색소폰을 연주하기 시작한 신현필은 대학에 진학한 후 우연히 접한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의 음반에 매료되어 재즈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신현필에게 있어 음악은 단순한 취미가 아닌 인생의 일부분이자 소명이었습니다. 그는 기술적인 연주를 넘어서, 음악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을 중요시했습니다. 그의 연주에서 가장 큰 특징은, 화려한 기교보다는 진정성과 감동을 우선시하는 점입니다.

신현필의 음악 여정은 '진정한 소리'를 찾아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는 초기에 존 콜트레인, 웨인 쇼터(Wayne Shorter), 마이클 브레커(Michael Brecker) 등 재즈 색소폰의 거장들의 스타일을 연구하고 모방했지만, 점차 자신만의 목소리를 발견하기 시작했고, 1990년대 중반부터는 한국적 정서와 재즈의 결합을 시도했습니다.

특히 그는 한국 전통 음악의 요소들을 재즈 어법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전통 민요의 선율을 차용하거나, 판소리의 창법에서 영감을 받은 색소폰 표현법을 개발하는 등, 그는 끊임없이 한국적 재즈의 가능성을 모색했습니다.

신현필의 색소폰 소리는 깊고 묵직하며, 한 음, 한 호흡마다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이는 그가 수많은 무대와 공연을 통해 쌓아온 경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신현필의 연주를 들으면, 마치 사람의 목소리처럼 그 안에 감정의 물결이 흐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신현필은 또한 서울예술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데 있어 중요한 가치는 단순히 기술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신현필은 학생들에게 음악을 통해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그가 가르친 대로, 음악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감동을 전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재즈 씬에서 활동하는 젊은 색소포니스트들 중 상당수가 신현필의 제자이거나 그의 영향을 받은 연주자들입니다.

3. 이병주, 새로운 세대와 함께 걷는 색소폰 아티스트

그리고 지금, 한국 색소폰 대중화의 세 번째 장을 써내려가고 있는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이병주입니다.

이병주는 전통과 현대를 잇는 다리 같은 존재입니다. 그는 기본기에 충실한 연주를 기반으로, 현대적 감각과 다양한 장르를 융합시키며 색소폰의 지평을 넓히고 있습니다.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병주는 음악적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마추어 색소포니스트였고, 집안에는 늘 음악이 흘렀습니다. 그는 10살 때 처음 색소폰을 접했고, 아버지의 지도 아래 기초를 다졌습니다.

전문적인 음악 교육을 받기 위해 예술고등학교와 음악대학에서 클래식 색소폰을 전공한 이병주는, 졸업 후 색다른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클래식 색소폰의 테크닉과 음색을 바탕으로, 재즈와 락, 일렉트로닉 음악까지 아우르는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 나갔습니다.

그는 클래식 색소폰 연주법을 바탕으로 치밀한 테크닉을 갖추었지만, 그 위에 다양한 색깔의 감성을 얹었습니다. 때로는 리릭하고(lyrical) 때로는 파워풀하게, 곡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그의 연주는 젊은 세대에게도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갑니다.

특히 그는 색소폰 솔로 앨범뿐만 아니라 다양한 콜라보 프로젝트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아이돌 가수들과의 협업, 인디 밴드의 세션 참여, 드라마 OST 작업까지— 이병주는 색소폰이 과거의 상징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의 이야기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 『City Breeze』는 도시의 외로움과 희망을 색소폰 선율로 풀어낸 곡으로, 특히 20~30대 청춘층 사이에서 큰 공감을 얻었습니다. 이 곡은 현대인의 바쁜 일상과 그 속에서 느끼는 미묘한 감정들을 섬세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또한 이병주는 SNS를 통해 색소폰에 대한 편견을 깨고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쉽게 따라할 수 있는 색소폰 강좌를 올리고, 젊은 감성에 맞춘 곡들을 색소폰 버전으로 편곡해 선보이며 "색소폰은 클래식한 악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악기"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색소폰은 내 감정을 대신 이야기해주는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이병주는 지금도 새로운 소리를 찾아 도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의 발자국을 따라 또 다른 젊은 색소포니스트들이 등장할 것입니다.

 

맺으며 : 세 세대, 하나의 숨결

이정식, 신현필, 이병주. 그들은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았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색소폰을 대중에게 다가가게 했습니다.

이정식은 품격과 정통성을, 신현필은 진정성과 깊이를, 이병주는 새로움과 가능성을 색소폰에 불어넣었습니다. 그들의 숨결이 모여 오늘 우리 주변 어디서나 색소폰 소리가 들리는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색소폰은 여전히 사람들의 삶을 노래합니다. 슬픈 날에도, 기쁜 날에도, 조용히 우리 곁을 지나는 소리. 그리고 앞으로도, 누군가는 또다시 색소폰을 들고 세상에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을 것입니다.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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