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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재즈 음악 ; 상하이 재즈의 첫걸음, 긴 침묵과 다시 살아난 소리, 현재 진행형

by 브라이언 양 2025.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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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재즈 음악에 관련된 사진
중국과 재즈 음악에 관련된 사진

 

목 차
1. 상하이, 재즈의 첫걸음을 떼다
2. 긴 침묵과 다시 살아난 소리
3. 오늘날 중국 재즈 씬, 그 뜨거운 현재진행형

 

 
중국과 재즈 음악에 대하여 : 동양이 대지에 울려 퍼진 음표

글쓰기 앞서 상하이, 재즈의 첫걸음을 떼다. 긴 침묵과 다시 살아난 소리, 중국의 재즈씬, 그 뜨거운 현재 진행형에 대해 써 볼까 합니다.

1. 상하이, 재즈의 첫걸음을 떼다

1920년대,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대서양 건너편에서는 재즈가 탄생했고, 그 리듬은 대륙을 넘어 아시아까지 스며들었다. 당시 중국의 상하이는 국제 도시였다.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수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이곳에 모였고, 그들의 문화도 함께 뒤섞였다.

상하이는 일찍이 외국인 조계지가 형성되면서 서구 문화에 개방적인 도시였다. 자연스럽게도, 서양인들의 오락거리였던 재즈 음악은 상하이에서 빠르게 퍼졌다. 1920년대 후반부터 상하이에는 재즈 클럽이 속속 들어섰고, 고급 호텔 라운지에서는 라이브 밴드가 재즈를 연주했다. 당시 상하이의 밤거리는 '동양의 파리'라는 별명에 걸맞게 화려했다. 황푸강을 따라 들어선 바와 클럽에서는 흥겨운 스윙 리듬과 블루스 멜로디가 끊이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초기 상하이 재즈 연주자들의 상당수가 필리핀 출신이었다는 사실이다. 필리핀은 미국 식민지였기 때문에 서구 음악에 익숙한 연주자들이 많았고, 이들은 상하이의 호텔과 클럽에서 연주하기 위해 고용되었다. 물론 중국인 연주자들도 점차 등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양 곡을 그대로 연주하는 데 그쳤지만, 점차 그들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시기의 재즈는 단순한 모방이 아닌, 다양한 문화적 배경이 녹아든 독특한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상하이 재즈의 전성기는 1930년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외래 문화를 경계하는 분위기 속에서 재즈는 퇴폐적이라며 금지되었고, 상하이의 재즈 클럽들도 문을 닫았다. 재즈는 중국 대륙에서 긴 시간 동안 자취를 감추게 된다. 하지만 이 짧았던 황금기는 훗날 중국 재즈 부흥기의 밑거름이 된다.

2. 긴 침묵과 다시 살아난 소리

재즈가 금지된 이후, 중국 대륙은 문화대혁명이라는 격동의 시기를 겪었다. 음악은 오로지 정치적 목적에 부합해야 했고, 서구풍 음악은 단속과 탄압의 대상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재즈는 그림자조차 드러낼 수 없었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탄압받고, 많은 악기가 불태워지거나 파괴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문화대혁명 이후, 1978년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을 선언하면서 중국은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외국 문화가 다시 유입되었고, 음악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재즈도 조심스럽게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 처음에는 외국인들이 운영하는 호텔이나 바에서 재즈 밴드가 등장했다. 주로 홍콩, 대만, 해외 중국인 사회를 통해 재즈 음반이 유입되었고, 일부 대담한 음악가들은 몰래 재즈를 연습했다.

1980년대 후반,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소규모 재즈 씬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당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리 가이(李改)였다. 그는 클래식 음악을 전공했지만, 우연히 재즈에 매료되어 독학으로 재즈 색소폰을 익혔다. 리 가이와 같은 1세대 중국 재즈 연주자들은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하다시피 했다. 그들은 재즈를 배울 정규 교육기관도, 참고할 만한 연주자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서툴지만 뜨거운 열정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조금씩 나아졌다. 베이징에는 'CJW'(China Jazz Workshop) 같은 전문 재즈 밴드가 등장했고, 상하이에도 재즈 클럽이 다시 문을 열었다. 1995년, 베이징에는 중국 최초의 정식 재즈 페스티벌인 'Beijing Jazz Festival'이 개최되었다. 이는 중국 내 재즈 부흥의 신호탄이었다. 동시에 이 페스티벌은 해외 아티스트들과 중국 뮤지션 간 교류의 장이 되었다.

오늘날, 중국의 재즈는 더 이상 외래문화를 흉내 내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중국인 연주자들은 중국적 감성과 전통 음악 요소를 재즈에 녹여 넣고 있다. 예를 들어, 에릭 쿵(孔祥东)과 같은 색소폰 연주자는 중국 민요 선율을 재즈로 재해석해 큰 주목을 받았다. 또한 티베트 음악, 몽골 전통 음악 같은 소수민족 문화와의 접목도 시도되고 있다. 이제 재즈는 단순히 수입된 문화가 아니라, 중국 음악계의 한 축으로 자리 잡았다.

3. 오늘날 중국 재즈 씬, 그 뜨거운 현재진행형

2020년대의 중국은 재즈 열풍이 확연히 느껴지는 나라다.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청두 같은 대도시에는 전문 재즈 클럽이 여럿 있으며, 젊은 세대는 재즈를 일종의 힙한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다. 매년 열리는 'Shanghai Jazz Festival', 'Beijing Nine Gates Jazz Festival' 같은 대형 행사에는 국내외 유명 연주자들이 초청되어, 수만 명의 관객을 모은다.

중국 재즈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그 다양성이다. 전통적인 스윙 재즈부터 현대적인 퓨전 재즈, 심지어는 프리 재즈까지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한다. 또한, 중국 전통 악기인 얼후(二胡), 고쟁(古筝), 비파(琵琶) 등을 재즈와 결합하려는 실험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재즈가 단순히 서구 문화를 모방하는 단계를 넘어, 진정한 '중국 재즈'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국 젊은 세대의 재즈 뮤지션들은 해외 유학을 통해 실력을 쌓기도 하고,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 재즈 연주자들과 소통하기도 한다. 그들은 뛰어난 연주 기술은 물론이고, 글로벌 감각을 지니고 있다. 베이징 중앙음악원이나 상하이 음악학원 같은 명문 대학에서도 재즈 전공이 생겨, 정규 교육을 받은 재즈 뮤지션이 꾸준히 배출되고 있다.

한편, 재즈는 단순한 음악 장르를 넘어, 도시 문화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주말 저녁 상하이의 프렌치 콘세션 거리나 베이징의 허우하이 호숫가를 거닐다 보면, 작은 바나 카페에서 라이브 재즈 연주가 울려 퍼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재즈는 더 이상 소수의 마니아만 즐기는 음악이 아니라,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 것이다.

최근에는 중국 각지에서 지역색을 살린 재즈 프로젝트들도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윈난성에서는 소수민족의 음악을 기반으로 한 에스닉 재즈가 실험되고 있고, 서안에서는 고대 실크로드 음악을 모티브로 한 퓨전 재즈 프로젝트가 주목받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중국 재즈의 가능성을 더욱 확장시키고 있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대중적 인지도나 시장 규모 면에서는 미국, 유럽, 일본 등에 비해 부족한 점이 많다. 그러나 그 부족함은 오히려 성장 가능성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중국은 거대한 인구와 빠른 문화 소비 속도를 바탕으로, 앞으로 재즈 분야에서도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 재즈. 어쩌면 처음에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이 둘은 서서히, 그리고 깊숙이 서로를 받아들였다. 푸른 음표는 긴 침묵을 뚫고 다시 울려 퍼졌고, 이제 중국 대지 위에서 자신만의 목소리로 노래하고 있다.

오늘 밤, 중국 어딘가의 작은 바에서는 색소폰이 낮게 운다. 그리고 그 소리를 따라, 재즈는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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