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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와 라이더 ; 하루를 재즈로 채우다, 재즈와 함께 흐르다, 밤. 재즈. 자유

by 브라이언 양 2025.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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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와 라이더 관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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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시동을 걸며, 하루를 재즈로 채우다 
2. 도시의 리듬, 재즈와 함께 흐르다
3. 밤, 재즈, 그리고 자유 

1. 시동을 걸며, 하루를 재즈로 채우다 

이른 아침, 도시의 공기는 여전히 밤의 흔적을 지우지 못한 채, 무거운 적막을 품고 있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걸어 나오는 나는 무심한 얼굴로 오토바이 곁에 선다. 아직 태양이 떠오르지 않은 골목, 조용히 바이크에 키를 꽂고 시동을 건다. '두두두두' 낮게 울리는 엔진음. 그 안에는 오늘 하루를 또 견뎌야 하는 의지와도 같은 무게가 담겨 있다. 하지만 나에겐 하나의 의식이 남아 있다. 블루투스를 켜고, 음악을 고른다. 단순한 플레이 버튼 하나지만, 그 순간 나의 하루는 완전히 다른 결로 시작된다. 

늘 듣는 건 재즈다. 오늘은 Stan Getz의 "Desafinado". 날이 밝지 않은 도심 속에서 부드럽게 흘러나오는 색소폰의 음색은, 마치 나의 고요한 내면과도 닮아 있다. 이 조합은 어찌 보면 이질적이다. 빠르고 시끄러운 오토바이, 그리고 느리고 여운 가득한 재즈. 하지만 바로 그 ‘이질감’이 그에겐 일종의 위로다.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하루를 살아가며, 나는 음악을 통해 자기만의 균형을 만든다.

나의 라이딩 인생은 우연에서 시작됐다. 대학 시절,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시작한 배달 아르바이트가 나의 삶을 바꿔놓았다. 처음엔 단순한 생계 수단이었지만, 반복되는 라이딩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도 어떤 해방감을 느꼈다. 정해진 길 없이 자유롭게 이동하는 기분, 시시각각 변하는 도시의 얼굴들. 그 모든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동시에 느껴진 건 공허함이었다. 엔진 소리와 도로의 굉음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어떤 감정의 결핍. 그 허전함 속에서 우연히 들은 Chet Baker의 트럼펫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감정을 안겨주었다. "무심한 듯 하지만 너무도 깊은 그 음색. 그건 마치 내가 달리고 있는 밤거리와도 닮아 있었어요."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매일 아침, 재즈를 들으며 라이딩을 시작했다. Miles Davis, John Coltrane, Charlie Parker… 그날의 기분, 하늘의 색, 도로의 상태에 따라 고르는 음악이 달라졌지만, 항상 재즈였다. 음악은 나에게 있어 감정을 다듬는 시간이며, 도심 속 자신만의 고요한 공간을 만들어주는 마법과도 같았다.

나는 헬멧 속 고요한 세계에서 음악을 듣는다. 외부의 소음은 차단되고, 귀에 닿는 건 부드러운 선율뿐이다. 빠르게 지나가는 차량과 사람들 사이, 나는 홀로 느리게 움직인다. 바쁜 하루 속, 그 느림은 오히려 나를 살게 만든다. ‘나는 움직이는데 마음은 멈춰 있는 기분’이라는 나의 말이 그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2. 도시의 리듬, 재즈와 함께 흐르다 

도시는 언제나 분주하다. 어디에선가는 항상 누군가가 바쁘게 걷고, 또 어디에선가는 누군가가 기다림에 지쳐 하품을 한다. 정해진 시간 안에 무언가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풍경. 그 속에서 나는 오늘도 오토바이에 올라탄다. 하지만 나의 도시는 조금 다르다. 그에겐 신호등의 깜빡임도, 차가 멈추는 브레이크음도, 사람들이 내뱉는 숨소리조차도 하나의 '리듬'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리듬에 맞춰 흐르는 음악, 바로 재즈다.

오토바이를 타고 도심을 누비는 나의 하루는 수많은 움직임으로 가득 차 있다. 오전 첫 배달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길, 점심시간의 분주한 거리, 저녁 무렵 붉게 물든 골목. 도시의 각 시간대는 저마다 다른 표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표정들은 음악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낮에는 경쾌한 템포의 피아노, 오후에는 느릿하고 낭만적인 색소폰, 해질 무렵엔 트럼펫이 어울린다.

나는 도로 위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본다.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는 부모, 무거운 가방을 들고 학교 가는 학생, 지친 얼굴로 담배를 피우는 회사원. 그 풍경은 단순히 스쳐가는 장면이 아니라, 재즈와 함께라면 하나의 스토리가 된다. 도시는 그렇게 음악을 통해 감정을 불어넣는다. 그 순간, 그의 귀에서 흐르는 건 Bill Evans의 피아노. 차분하면서도 섬세한 그 선율은 도시의 소음을 감싸 안는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재즈를 듣지 않으면 도시가 너무 거칠게 느껴져요." 실제로도 그렇다. 재즈는 도시의 경계선을 흐리게 만든다. 나는 차와 사람들 사이를 가로지르며 그 경계 없는 흐름에 몸을 맡긴다. 신호등 앞에서 잠시 멈춘 순간에도 그는 음악과 함께한다. 짧은 정지, 그 몇 초가 너무나 소중한 여백처럼 느껴진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참 배달을 다니던 중, 갑작스레 비가 내렸다. 다른 라이더들은 당황하거나 서둘러 우비를 꺼내 입었지만, 나는 바이크를 잠시 세우고, 빗소리 위에 음악을 얹었다. 조용히 흘러나오던 Lester Young의 색소폰과 빗소리가 절묘하게 어울리며, 도심이 갑자기 영화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도시가 단지 일터가 아닌 예술처럼 느껴졌다고 회상한다.

도시는 바쁘고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서도, 나는 자신만의 리듬을 찾는다. 재즈는 나에게 정답을 말해주진 않지만, 질문을 계속 던지게 만든다. 그리고 그 질문들 속에서 그는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해간다. 재즈와 도시, 라이딩과 감정. 이 네 가지가 만나는 지점이 바로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3. 밤, 재즈, 그리고 자유 

하루가 저물고, 도시는 조용해진다. 낮 동안의 분주함은 차츰 가라앉고, 도로는 텅 비어간다. 가로등 불빛이 하나둘 켜지면, 나에겐 또 다른 시간이 시작된다. 이 시간, 그는 진짜 자유를 느낀다. 이유는 간단하다. 더 이상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되고, 사람들의 시선도, 차들의 경적도 없다. 오직 그와 도로, 그리고 음악만이 존재하는 시간. 그리고 그 밤엔 어김없이 재즈가 흐른다.

내가 밤에 가장 자주 듣는 곡은 Keith Jarrett의 “The Köln Concert”. 이 곡은 마치 바다 같다. 처음엔 끝이 보이지 않아 막막하지만, 이내 부드럽게 밀려오는 파도처럼 감정을 하나둘 깨운다. 바이크를 타고 한적한 도로를 달리는 그의 귀에는 그 피아노 선율이 속삭이듯 다가온다.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생각들이 잦아들고, 마음속에서 감정이 맑아진다.

밤에는 굳이 빠르게 달릴 필요가 없다. 그는 천천히 달리며, 거리의 불빛 하나하나를 음미한다. 정지된 신호등 앞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운전자, 벤치에 앉아 있는 노인, 아직 문 닫지 않은 포장마차. 낮에는 쉽게 지나쳤던 것들이 밤이 되면 다르게 다가온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흐르는 음악은, 장면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준다.

나는 자주 강가에 간다. 바이크를 세우고, 강가 주변 잔듸에 앉아 재킷을 벗는다. 바람이 불면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나는 이어폰을 꽂는다. 그 순간, Billie Holiday의 “I’ll Be Seeing You”가 흐른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단지 별을 바라본다. 그 시간만큼은 누구의 방해도, 어떤 목적도 없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존재하는 시간. 나는 그걸 ‘진짜 자유’라 부른다.

자유는 어디론가 떠나는 것만이 아니다. 머무르면서도 스스로를 느끼는 것, 그 자체로 충분한 순간. 나는 바이크를 ‘몸’이라고 말한다. 나를 현실로 이끄는 무게 있는 존재. 반면 재즈는 나의 ‘마음’이다. 혼란 속에서도 감정을 놓지 않게 해주며, 느리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

그래서 나는 매일 밤, 도로 위를 달린다. 이유는 없다. 단지 그 시간이 필요해서, 그 음악이 나를 부르고 있어서. 사람들은 말한다. 재즈는 어렵다고, 바이크는 위험하다고. 하지만 나는 안다. 그 두 가지가 만나야 비로소 ‘자기 자신’이 완성된다는 것을. 거칠고 빠른 삶 속에서 마음을 다듬는 법, 그건 오직 두 바퀴 위 재즈가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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