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1. 서울의 밤을 물들이는 색소폰 – 이병주의 음악 여정
2. 악보 너머의 삶 – 이병주의 연주 철학
3.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 인간 이병주의 따뜻한 속삭임
1. 서울의 밤을 물들이는 색소폰 – 이병주의 음악 여정
서울이라는 도시는 언제나 바쁘고 복잡하다. 아침이 되면 모두가 출근길로 쏟아져 나오고, 밤이 되면 어두운 빛과 자동차의 불빛 속에서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그 안에서 들려오는 이병주의 색소폰 소리는 마치 이 도시의 또 다른 심장 소리 같다. 격식 없이 스며들고, 꾸밈없이 울린다. 이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서울이라는 공간을 다시 보게 된다.
이병주는 음악가 집안에서 자랐다. 그의 부모는 모두 클래식 연주자였고, 그가 처음 연주한 악기는 클라리넷이었다. 어린 시절엔 모차르트와 바흐의 선율 속에서 자랐지만, 어느 날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은 존 콜트레인의 'Naima'는 그의 인생을 뒤흔든다.
"그 곡을 듣고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어요. 무언가 내 안에 깊이 박혔죠. 그게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분명한 건 제 삶이 달라질 거라는 예감이었어요."
그날 이후 그는 클래식 악보 대신, 자유롭게 감정을 실어내는 재즈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고등학교 시절엔 이미 친구들과 작은 밴드를 만들어 연습을 시작했고, 대학 진학 후엔 자연스럽게 재즈 전공을 택했다. 그러나 그의 진짜 스승은 교과서나 강의가 아니었다. 그는 홍대 거리의 클럽에서, 밤을 새우며 연주하던 선배들과의 경험 속에서 삶과 음악을 함께 배워갔다.
그의 첫 솔로 무대는 한 재즈 클럽의 작은 공연장이었다. 조명도 미약했고, 사운드 시스템도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날 이병주는 그 어떤 콘서트보다 집중했고, 관객들은 숨소리조차 죽이며 그의 연주를 들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그날 연주한 곡들은 한 곡도 녹음되지 않았어요. 하지만 괜찮아요. 진짜 음악은 기억 속에 오래 남아요. 기록보다도요."
이후 그는 뉴욕으로 건너간다. 재즈의 본고장에서 그는 세계 각지에서 온 음악가들과 부딪치며 다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잘하는 사람은 너무 많아요. 그런데 기억에 남는 사람은 적어요. 나는 나만의 색을 찾고 싶었죠."
어느 날, 뉴욕의 소호 거리에서 버스킹을 하던 중, 그는 한 곡을 연주하다가 울컥해 눈물을 쏟는다. 그 순간, 작은 아이가 그의 앞에 멈춰 서서 눈을 반짝이며 연주를 들었다.
"그 아이의 눈빛을 보며 생각했어요. 그래, 이게 음악이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진심이 닿는 것이 음악이죠."
그렇게 서울로 돌아온 그는 자신만의 색을 담은 첫 앨범을 발표한다. 대중적인 성공보다는 깊은 공감과 울림을 남긴 이 앨범은 특히 '밤 열한 시의 산책'이라는 곡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도시의 밤, 혼자 걷는 길에서 들으면, 누구나 한 번쯤 울컥하게 되는 그런 음악이다.
2. 악보 너머의 삶 – 이병주의 연주 철학
이병주의 음악에는 악보에 없는 뭔가가 있다. 감정의 진폭, 순간의 직감,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공감이 그것이다. 그는 늘 말한다.
"재즈는 살아 있는 언어예요. 상황과 감정에 따라 달라지고, 그래서 더 인간적이에요."
그는 매번 같은 곡을 연주해도 절대 똑같이 연주하지 않는다. 그날의 기분, 날씨, 관객의 표정까지도 그의 연주에 영향을 준다. 예를 들어 'Autumn Leaves'를 연주할 때, 일반적인 쓸쓸함이 아닌 봄의 아련함을 담아낼 때도 있다. 이는 그가 음악을 단순한 연주가 아닌 '감정의 전달'로 보기 때문이다.
그의 연습 방식 또한 독특하다. 그는 매일 일정 시간 동안 스케일 연습 외에도 감정 중심의 즉흥 연주를 한다. 예를 들어 '잊고 싶지만 잊히지 않는 사랑', '엄마와의 따뜻했던 대화', '어느 낯선 도시의 골목길' 등을 주제로 설정해놓고, 그 감정에 맞는 연주를 자유롭게 풀어낸다. 이는 기술을 넘어 감성의 깊이를 훈련하는 방식이다.
그는 존 콜트레인, 조 러바노, 마이클 브레커 등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동시에 '한국적인 정서'를 음악에 녹이려 노력해왔다. 한국 가곡, 민요에서 영감을 얻어 그의 색소폰 소리에는 한과 여백이 자연스럽게 묻어난다.
"내가 자란 곳의 소리, 내가 들은 말들, 그리고 내가 겪은 이야기들이 결국 내 음악을 만들죠. 그건 아무도 따라 할 수 없는 나만의 언어예요."
최근에는 시와 재즈를 결합한 프로젝트에도 도전하고 있다. 시인 김사인과의 협업으로, 시를 낭독하고 그 감정에 맞는 즉흥 연주를 이어가는 방식이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음악이 얼마나 깊은 정서적 울림을 줄 수 있는지 다시 확인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3. 스포트라이트 뒤에서 – 인간 이병주의 따뜻한 속삭임
많은 사람들이 이병주를 '색소폰보다 더 따뜻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무대 위에서는 진지하고 몰입하지만, 무대 아래에서는 한없이 다정하고 겸손한 그의 모습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사람을 우선한다. 연주할 때도, 팬을 만날 때도, 동료와 대화할 때도. 그는 종종 이런 말을 한다.
"음악은 사람을 향한 예의예요. 누군가의 귀에 닿는다는 건, 그 사람의 하루에 내가 들어간다는 거니까요."
그래서 그는 절대 함부로 연주하지 않는다. 작은 무대든 큰 무대든, 관객이 많든 적든, 그는 언제나 온 힘을 다해 연주한다.
서울 외곽의 청소년 문화센터에서 매달 한 차례 열리는 '감정 음악 워크숍'은 그가 꾸준히 이어가고 있는 활동이다. 이 워크숍에서는 음악 기술보다도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마주보는 법을 나눈다. 그는 말한다.
"누구나 자기 안에 멜로디 하나쯤은 있어요. 그걸 꺼내볼 용기만 있으면 되죠."
그는 SNS를 통해 팬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종종 팬이 올린 커버 영상에 직접 댓글을 달거나, 손편지를 써서 답장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떤 팬은 그가 남긴 댓글 하나에 감동해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삶은 단지 음악가로서가 아니라, '좋은 사람'으로서의 역할까지 품고 있다. 그는 말한다.
"음악은 내 언어지만, 결국은 사람을 위한 것이어야 해요. 누군가의 하루를, 조금 더 괜찮게 만들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죠."
오늘도 그는 조용히 연습실에 앉아 색소폰을 불고, 작은 무대 위에서 관객과 눈을 맞추며 연주한다. 그 소리는 어쩌면 거창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 순간, 그것은 가장 진실한 울림이 된다. 그렇게 이병주의 음악은 오늘도 흐르고 있다. 바람처럼. 빛처럼. 그리고 삶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