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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리드 : 1990년대, 문화적 충격, 해체와 부활

by 브라이언 양 2025.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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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리드 관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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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1990년대, 낯선 장르로 한국 음악계를 사로잡다
2. 문화적 충격에서 패션, 언어, 감성까지—세대를 사로잡은 정체성
3. 해체와 부활, 그리고 남겨진 유산

솔리드: 한국 R&B의 새벽을 연 전설의 그룹

1. 1990년대, 낯선 장르로 한국 음악계를 사로잡다

1993년, 국내 가요계는 여전히 트로트와 발라드 중심의 보수적인 장르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해외 팝 음악은 MTV와 일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제한적으로 유입되던 시절. 그런 시기, 조용히 등장한 한 팀이 있었다. 그들은 낯선 분위기의 R&B 음악을 기반으로 한국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그룹, 바로 솔리드(Solid)였다.

솔리드는 김조한, 정재윤, 이준 세 명의 멤버로 구성된 남성 3인조 R&B 그룹이었다. 이들은 모두 미국에서 성장한 교포 출신으로, 당시 한국 대중음악계의 흐름과는 전혀 다른 음악 세계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김조한은 LA에서 이미 음악 활동을 하고 있었으며, 정재윤은 프로듀서 및 작곡가로서의 재능을 갖춘 인물이었다. 이준은 퍼포먼스와 언어 감각, 비주얼을 아우르는 멀티 재능을 가진 멤버로 팀의 색깔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솔리드의 등장은 그야말로 한국형 R&B의 시작이었다. 이들이 1993년 발표한 1집 《Give Me a Chance》는 당시 기준으로는 생소한 뉴잭스윙과 컨템포러리 R&B, 힙합 비트가 혼합된 앨범이었다. 특히 ‘이 밤의 끝을 잡고’는 이후 R&B 명곡으로 손꼽히며, 1995년 2집에 수록되어 전국을 강타했다.

그들의 음악은 리듬감과 감성이 중심이 되며, 감정을 깊이 있게 담아내는 것이 특징이었다. 특히 김조한의 부드러우면서도 파워풀한 보컬은 한국 청중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흑인음악 특유의 그루브와 보컬 기법들이 김조한의 목소리를 통해 구현되었고, 이는 국내 대중음악 팬들에게 R&B라는 장르의 진면목을 각인시켰다.

솔리드는 2집 《The Magic of 8 Ball》를 통해 그 진가를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이 밤의 끝을 잡고’, ‘천생연분’, ‘나만의 친구’, ‘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등 수록곡 대부분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었으며, 음반은 100만 장 이상 판매되는 대기록을 세웠다. 이로써 솔리드는 단순히 실험적인 장르를 시도한 팀이 아닌, 주류 대중 속에서 R&B를 정착시킨 선구자로 우뚝 서게 된다.

그들은 한국 대중가요 시장에 ‘소리의 결’을 바꿔놓은 인물들이었다. 이전까지는 잘 정리된 멜로디와 단조로운 코드 진행이 가요의 특징이었다면, 솔리드는 코드의 확장성, 화성 진행의 풍부함, 리듬 파트의 다양성을 적극적으로 보여주었다. 특히 정재윤의 작곡은 기존의 작법을 벗어난 유려한 화성 진행과 세련된 편곡으로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2. 문화적 충격에서 패션, 언어, 감성까지—세대를 사로잡은 정체성

솔리드는 단지 음악적인 파격뿐 아니라, 패션과 언어, 감성의 코드에서도 혁신적인 존재였다. 당시 대한민국은 IMF 외환위기를 전후로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 속에 있었고, 청춘들은 진로에 대한 불안과 정체성 혼란에 휩싸여 있었다. 그런 가운데 솔리드의 음악은 사랑, 외로움, 헤어짐, 내면의 슬픔을 섬세하게 포착하면서도, 동시에 자유로운 영혼을 갈망하는 정서를 담고 있었다.

‘이 밤의 끝을 잡고’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이 밤의 끝을 잡고 너와 함께 있고 싶지만 / 이제는 너를 잡을 수 없어”라는 가사는 이별의 순간에 느끼는 절절한 감정을 압축적으로 담아내며, 수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발라드와는 또 다른 감성의 깊이를 보여주며, R&B의 정체성을 감정 표현의 수단으로 자리 잡게 했다.

또한 솔리드는 패션적인 측면에서도 당대와는 전혀 다른 미감을 제시했다. 힙합 스타일의 헐렁한 바지, 스냅백, 셔츠와 재킷 등은 당시로서는 생소했으나 곧 유행의 중심이 되었다. 팬들은 그들의 의상을 따라 하고, 솔리드의 스타일을 모방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 현상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이준의 영어 섞인 멘트와 김조한의 한국어 발음 특유의 억양, 그리고 그들이 가진 ‘이방인의 감성’은 오히려 신선함으로 다가왔다. 이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숨기기보다 오히려 드러내면서 다문화적 정체성과 글로벌 감각을 자연스럽게 한국 대중문화 속에 녹여냈다.

솔리드가 만들어낸 감성은 단순한 사랑 노래에 그치지 않았다. ‘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야’는 첫사랑의 애절함과 두려움을, ‘천생연분’은 경쾌한 멜로디에 긍정적인 사랑의 환상을 담아 대중과 소통했다. 이처럼 솔리드는 감정의 폭을 넓히는 동시에, 음악의 결을 더욱 섬세하게 만들어 갔다.

그들의 음악은 클럽 문화와도 맞닿아 있었다. 90년대 중후반, 서울 강남과 홍대를 중심으로 클럽 문화가 확산되면서 R&B, 힙합, 하우스 등의 음악이 주류의 외곽에서 점점 힘을 얻기 시작했다. 솔리드는 그러한 흐름과 맞물리며, 단순한 방송 위주의 가수에서 벗어나 음악 팬덤을 중심으로 한 ‘서브컬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3. 해체와 부활, 그리고 남겨진 유산

솔리드는 1997년, 4집 《Solidate》를 마지막으로 돌연 해체를 선언한다. 당시 팬들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들은 해체 이유에 대해 “각자의 삶과 음악에 집중하고 싶다”고 밝혔고, 해체 이후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김조한은 솔로 활동을 통해 여전히 R&B의 깃발을 지키며, ‘사랑에 빠지고 싶다’ 등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이준은 연기자 및 방송인으로 활동했고, 정재윤은 미국으로 건너가 음악 프로듀서로서의 길을 이어갔다.

솔리드의 음악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R&B의 전성기를 맞으며, 솔리드는 ‘원조 R&B 그룹’으로서 뮤지션들과 평론가들에게 끊임없이 언급되었다. 브라운아이드소울, 휘성, 박정현, 나얼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솔리드를 존경의 대상으로 언급했으며, 그들의 음악을 커버하거나 오마주하는 사례도 잇따랐다.

그리고 2018년, 믿기 어려운 소식이 전해졌다. 솔리드가 20년 만에 완전체로 컴백한 것이다. 《Into the Light》라는 앨범을 발표하며,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적 감성과 현재의 트렌드를 접목시킨 새로운 사운드를 선보였다. 수록곡 ‘내일의 기억으로’는 과거와 현재의 감정을 잇는 아름다운 연결선으로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았고, 그들의 콘서트는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컴백은 단순한 복고적 감상이 아니었다. 이들은 여전히 음악을 향한 진지함과 실험정신을 지니고 있었고, 젊은 뮤지션들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솔리드의 부활은 한 시대를 풍미한 그룹이 과거에 안주하지 않고, 현재에도 유의미한 예술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었다.

오늘날 솔리드는 단지 음악적 성공을 넘어, 한국 대중음악에서 새로운 문을 연 개척자로 평가받는다. 이들이 한국에 심어놓은 R&B의 씨앗은 수많은 아티스트들에 의해 꽃을 피웠고, 그 감성과 스타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계승되고 있다. 음악, 패션, 정체성, 감정의 언어까지—솔리드는 우리에게 여전히 살아 있는 유산이다.


마치며

시대는 변하고 트렌드는 순식간에 뒤바뀌지만, 진심이 담긴 음악은 오래도록 남는다. 솔리드는 그러한 음악을 들려준 몇 안 되는 아티스트 중 하나였다. 그들이 들려준 ‘이 밤의 끝’은 지나갔을지 몰라도, 그들이 남긴 흔적은 오늘날 R&B와 발라드, 힙합과 소울을 아우르는 수많은 음악 속에서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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