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1. 시드니 베셰(Sidney Bechet) 색소폰에 첫 번째 목소리를 불어넣다
2. 찰리 파커(Charlie Parker) 비밥과 함께 날아오른 색소폰의 신세계
3. 케니 지(Kenny G) 색소폰을 일상의 음악으로
글쓰기 앞서 ;
색소폰의 대표적 연주자 시드니 베셰, 찰리 파커, 케니 지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볼까 합니다.
색소폰은 참 묘한 악기입니다. 관악기이면서도 사람 목소리처럼 울리고, 클래식과 재즈, 팝과 록을 자유롭게 넘나듭니다. 한때는 '특수한 장르'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지만, 오늘날엔 거리 공연에서도, 카페의 배경음악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변화를 만든 건 다름 아닌 '사람'입니다. 악기는 그 자체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숨을 불어넣고, 이야기를 실어야 비로소 세상과 대화를 시작할 수 있지요.
오늘은 색소폰을 대중의 곁으로 이끈 세 명의 연주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았지만, 모두가 색소폰이라는 악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사람들이죠.
그들의 음악을 따라 걷다 보면, 우리도 모르게 색소폰이 가진 놀라운 매력에 빠져들게 될지도 모릅니다.
1. 시드니 베셰(Sidney Bechet) 색소폰에 첫 번째 목소리를 불어넣다
시드니 베셰는 1897년, 뉴올리언스의 프렌치 크레올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은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거리는 늘 퍼레이드와 마칭 밴드로 들썩였고, 교회에서는 가스펠 송이 울려 퍼졌습니다. 베셰는 이 다채로운 소리의 바다 속에서 자랐고, 자연스럽게 클라리넷을 손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곧, 색소폰에 운명처럼 매료됩니다. 특히 소프라노 색소폰은 그의 목소리, 그의 성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습니다. 색소폰은 그의 숨결을, 그의 슬픔과 기쁨을, 말로 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냈습니다.
베셰는 강렬한 즉흥연주로 유명했습니다. 연주할 때마다 그는 전신을 사용했습니다. 관객을 바라보며, 때로는 눈을 감고, 온몸으로 색소폰을 끌어안듯 불어댔습니다. 그 모습은 연극이자 기도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재즈가 막 태동하던 시기에 활동했습니다. 루이 암스트롱과 함께 연주한 경험도 있었고, 당시로서는 드물게 유럽으로 건너가 프랑스, 영국, 독일 등지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그야말로 국민적 사랑을 받았지요. 파리에서 열린 그의 콘서트는 항상 매진이었고, 그의 이름을 딴 재즈 클럽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베셰의 연주는 기술적인 완벽함보다는, 인간적인 감정의 진폭을 더 중요시했습니다. 그의 대표곡 "Petite Fleur"를 들으면 알 수 있습니다. 간결한 멜로디 안에 묘한 그리움과 따스함이 배어 있습니다. 이 곡은 오늘날에도 색소폰 입문자들이 가장 먼저 연습하는 곡 중 하나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소리 하나하나에 '사람 냄새'가 배어 있기 때문입니다. 베셰는 생애 후반기에 프랑스로 완전히 이주하여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외국 땅에서도 늘 뉴올리언스를 그리워했고, 그 향수를 음악으로 녹여냈습니다. 그의 색소폰은 늘 한결같았습니다. 집을 떠나온 이방인의 쓸쓸함, 그리고 세상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함께 울려 퍼졌습니다.
그가 아니었다면 색소폰은 재즈 안에서도 지금처럼 감정의 중심에 서지 못했을 것입니다. 베셰는 색소폰을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하나의 '목소리'로 만들어낸 최초의 연주자였습니다.
2. 찰리 파커(Charlie Parker) 비밥과 함께 날아오른 색소폰의 신세계
찰리 파커, 별명 '야드버드(Yardbird)', 줄여서 '버드(Bird)'. 그 별명처럼 그는 언제나 자유롭게 날아다녔습니다. 그리고 색소폰을 타고, 인간 정신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습니다.
파커는 1920년 캔자스시티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음악적 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거리에서, 클럽에서, 동료들과의 치열한 '잼 세션'을 통해 스스로를 단련했습니다. 그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한 번은 무대에서 엉망진창으로 연주해 조롱을 당한 뒤, 이를 갈며 하루 15시간 이상 색소폰을 연습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테크닉과 독창적인 음악 어휘를 손에 넣었습니다. 파커는 음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음과 음 사이를 찌르고, 꿰뚫고, 자유자재로 넘나들었습니다. 그의 솔로는 마치 끊임없이 변주하는 인간 정신의 흐름 같았습니다.
1940년대 중반, 파커는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 등과 함께 비밥(Bebop) 혁명을 이끕니다. 비밥은 빠르고 복잡한 코드 진행, 긴박한 리듬, 자유로운 즉흥연주를 특징으로 합니다. 단순히 춤추기 좋은 음악을 넘어, 듣는 이의 사고를 자극하는 음악. 그 속에서 색소폰은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거듭납니다. 더 이상 부드럽고 감미로운 소리만을 내는 악기가 아니라, 번뜩이는 지성과 야성을 동시에 품은 '사상의 악기'가 됩니다.
찰리 파커의 대표곡인 "Ornithology"나 "Donna Lee"를 들어보세요. 첫 마디부터 쏟아지는 음표의 폭포, 그리고 그 모든 것 위를 유영하는 파커의 색소폰. 그는 단순히 빠르게 연주한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치밀한 구조와 감정의 논리가 함께 살아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은 늘 순탄치 않았습니다. 약물과 알코올 중독, 건강 악화, 경제적 어려움. 그는 수많은 내적 갈등 속에서도 색소폰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의 색소폰은 때로는 승리의 함성이었고, 때로는 절망의 신음이었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겨우 34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색소폰의 언어를 완전히 새로 썼습니다. 이후 등장한 모든 색소폰 연주자들 소니 롤린스, 존 콜트레인, 캐넌볼 애덜리 모두 파커의 그림자 아래에서 출발했습니다.
찰리 파커는 색소폰이 인간 정신의 가장 높은 곳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그리고 그 비행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3. 케니 지(Kenny G) 색소폰을 일상의 음악으로
시간이 흐르며 세상은 변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경제는 성장했고, 사람들은 점점 더 바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음악 역시 변화를 요구받았습니다. 과거처럼 무겁고 복잡한 음악만으로는 대중과 소통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더 가볍고, 더 감성적이고, 더 편안한 음악을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 요청에 가장 정확히 응답한 사람이 바로 케니 지입니다.
케니 지는 어린 시절부터 색소폰을 불었습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색소폰을 처음 불었을 때, 내 안의 무언가가 깨어나는 걸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전통 재즈의 길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대신 팝, 어덜트 컨템포러리, R&B 같은 장르를 과감히 접목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1986년 앨범 Duotones입니다.
"Songbird"는 발표되자마자 전 세계 차트를 휩쓸었습니다. 케니 지의 색소폰은 단순히 멜로디를 연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소리 자체가 따뜻하고 매끄럽게 다가옵니다. 무언가를 주장하기보다는, 곁에 조용히 머물러주는 느낌. 그래서 그의 음악은 일상의 다양한 순간과 어우러졌습니다. 드라이브할 때, 공부할 때,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비평가들은 그를 혹평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달콤하다", "재즈 정신이 없다"고. 하지만 케니 지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스스로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의 목표는 소수의 마니아가 아닌, 가능한 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그는 성공했습니다. 그의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7천만 장 이상 팔렸고, 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색소포니스트가 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색소폰을 모르는 사람조차 알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성공은 색소폰이라는 악기를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일상 속의 친구'로 바꿔놓았습니다. 어쩌면 진짜 대중화란 그런 것 아닐까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삶의 배경 속에 조용히 스며드는 것.
맺으며 세 가지 얼굴, 하나의 악기
시드니 베셰는 색소폰에 처음으로 영혼을 불어넣었습니다.
찰리 파커는 색소폰을 통해 인간 정신의 날개를 펼쳤습니다.
케니 지는 색소폰을 우리 일상 가장 가까운 곳으로 데려왔습니다.
그들은 시대도 다르고, 스타일도 달랐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숨결이 모여, 오늘날 우리가 사랑하는 색소폰의 얼굴을 만들어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어떤 소년이나 소녀가 처음으로 색소폰을 불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 작은 숨결 속에는, 베셰의 온기, 파커의 열정, 케니 지의 따스함이 깃들어 있을 것입니다.
색소폰은 여전히, 우리 곁에서 숨 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숨결은 앞으로도, 끊임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