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
1. 그의 어린 시절과 가수로의 데뷔 이야기
2. 트로트 탑의 자리까지 - 명곡과 방송, 그리고 국민 가수로의 성장
3. 그의 음악 인생 - 설운도의 현재와 트로트의 미래
가수 설운도에 대하여 - 트로트의 전설을 말하다
1. 그의 어린 시절과 가수로의 데뷔 이야기
한국 트로트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 설운도는 1958년 6월 23일,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영춘이며, 어린 시절부터 유난히 음악에 대한 감각이 뛰어났던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노래 잘하는 소년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부모님 모두 음악에 크게 관련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설운도는 자신만의 음악적 세계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라디오를 듣고, 당시의 가요를 따라 부르며 음악의 길을 꿈꿨다.
설운도의 인생에서 음악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어릴 적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못했기에 그는 어린 나이부터 생계를 돕기 위해 다양한 일을 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음악만큼은 절대 놓지 않았다. 청소년기에는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중고 기타를 사서 밤마다 골방에서 연습을 거듭했고, 어느 날 친구의 추천으로 노래 경연 대회에 참가하게 되면서 그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는다.
이후 그는 부산에서 음악 활동을 하다 상경하여, 서울에서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하지만 서울 생활은 만만치 않았다. 고시원 생활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고, 당시 유행하던 포크와 발라드, 트로트까지 모두 섭렵하기 위해 고된 연습과 다양한 무대에 도전했다. 그렇게 무명가수로 오랜 시간을 보낸 후, 1982년 '잃어버린 30년'이라는 곡으로 드디어 대중 앞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설운도의 데뷔곡 '잃어버린 30년'은 한국 사회에 커다란 울림을 주었다. 이 노래는 6.25 전쟁 이후 이산가족의 아픔을 절절히 담아낸 곡으로, 감정이 풍부한 그의 보이스와 호소력 있는 창법은 대중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았다. 이 곡은 단순히 히트를 넘어 하나의 사회적 현상처럼 확산되었고, 이산가족 찾기 운동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 후 설운도는 꾸준히 히트곡을 내며 대중가요계의 중심에 자리 잡는다. '사랑이 이런 건가요', '사랑의 트위스트', '보라빛 엽서' 등 그의 음악은 트로트라는 장르의 전통성과 대중성을 모두 아우르며 세대를 초월한 사랑을 받게 된다. 특히 그의 무대 매너, 복고풍이지만 세련된 패션 감각, 친근한 이미지 등은 80~90년대를 통틀어 트로트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작용했다.
그의 음악 인생의 초기에는 록, 발라드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대한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설운도는 결국 트로트라는 자신만의 장르에서 최고의 자리를 지켰고, 누구보다도 그 음악을 사랑하고 이해하는 가수로 성장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늘 "트로트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담긴 음악이다"라고 말하며 트로트의 세계화를 꿈꾸기도 했다.
2. 트로트 탑의 자리까지 - 명곡과 방송, 그리고 국민 가수로의 성장
설운도의 음악 인생은 꾸준함 그 자체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그의 음악은 노래방 인기곡 순위의 상단을 지켰으며, 전국 콘서트와 방송 활동을 통해 매년 팬들과 호흡했다. 특히 '다함께 차차차'와 같은 리듬감 있는 트로트곡은 당시 어르신뿐 아니라 젊은층에게도 많은 인기를 끌었다.
1990년대 이후에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연령대와 소통하며 새로운 이미지로 재탄생했다. 설운도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하며 특유의 유쾌한 성격과 입담을 선보였고, 이는 트로트 가수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무대에서는 진지하고 정통적인 모습을, 방송에서는 친근하고 소탈한 모습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국민 가수'라는 타이틀에 걸맞는 다면적인 매력을 보였다.
설운도가 만들어낸 명곡들은 시대를 넘어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사랑이 이런 건가요', '보라빛 엽서', '사랑의 트위스트', '원점', '사랑밖엔 난 몰라' 등은 전 세대를 아우르며 노래방 애창곡이 되었고, 특히 중장년층에게는 청춘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곡들로 남았다. 그의 노래에는 항상 따뜻한 감성과 사람 냄새가 배어 있으며, 한국인의 정서에 밀착된 멜로디와 가사로 감동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후배 양성에도 큰 노력을 기울였다. 직접 작사, 작곡한 곡을 후배 가수들에게 제공하거나, 트로트 프로그램의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며 후배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최근에는 다양한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선배로서의 무게감을 지닌 멘토로 활약하며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특히 MBC의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의 부캐 '유산슬'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젊은 세대에게도 새로운 인지도를 쌓았다. 이는 설운도의 트로트가 세대를 넘어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단순히 과거의 히트곡으로 회상되는 가수가 아니라, 끊임없이 현재형으로 활동하는 레전드라는 점이 설운도의 가장 큰 매력이다.
또한 그는 연기와 MC, 라디오 DJ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활동했으며,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로서의 면모도 보여줬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그는 무대에서 마이크를 들었을 때 가장 빛나며, 그 순간이 바로 '가수 설운도'의 진정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3. 그의 음악 인생 - 설운도의 현재와 트로트의 미래
60세를 훌쩍 넘긴 지금도 설운도는 여전히 무대 위에서 뜨겁다. 그는 여전히 신곡을 발표하고, 콘서트를 열며, 젊은 가수들과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유튜브와 SNS를 통해 팬들과 직접 소통하며 세대 간의 벽을 허물고 있다.
2020년대 들어 트로트의 부활이라는 말이 등장하면서 설운도는 다시금 조명받고 있다. 그는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디지털 싱글을 발표하거나, 트렌디한 편곡을 선보이며 젊은 청취자에게도 어필하고 있다. 그의 음악은 고전적인 트로트의 정수를 간직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놓치지 않으며, 트로트의 대중화와 세계화를 위한 기반이 되고 있다.
설운도는 트로트를 단순한 ‘어른들의 음악’이 아닌, ‘모두의 음악’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는 항상 무대 위에서 관객과의 교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콘서트 현장에서는 수천 명의 관객과 함께 노래하며 울고 웃는다. 그에게 음악은 ‘인생의 동반자’이자 ‘가장 강력한 소통 수단’이다.
그는 종종 “내가 무대에 설 수 있는 이유는 팬들 덕분”이라고 말한다. 팬들을 진심으로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이 그의 활동 전반에 드러나 있으며, 그런 따뜻함이야말로 오랜 시간 사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트로트의 흐름 속에서 설운도는 중심을 지키는 존재다. 그는 전통을 지키되, 새로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트로트를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진정성 있는 노래를 하라”고 조언하며, 시대에 따라 유행은 바뀌어도 감동은 변치 않는다고 강조한다.
앞으로도 설운도는 트로트의 역사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인물로 남을 것이며, 그가 걸어온 길은 한국 대중음악의 한 축이자, 정서적 위안을 주는 문화 자산이 될 것이다. 그의 음악 인생은 여전히 진행형이며, 그의 노래는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될 것이다.
진심을 담아 노래하는 가수, 세대를 아우르는 목소리, 변함없이 트로트를 사랑하는 장인, 그가 바로 설운도다.